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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인문 철학

'제자리에 있다는 것' 책 리뷰 | 클레르 마랭, 존재를 다시 묻다

by 나연 킴 2026. 1. 4.

클레르 마랭의 '제자리에 있다는 것'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여기고 정착하며 살아온 주어진 "제자리"라는 감각에 대해 다시 묻는 책입니다. 성공이나 안정 같은 외적인 기준이 아니라, 몸과 삶의 감각 속에서 제자리에 있다는 느낌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되짚어갑니다. 읽다보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 어떤 순간에 스스로를 제자리에 있다고 느껴왔는지 되돌아 보게 됩니다.

 

작품 기본 정보

 

 

제목: 제자리에 있다는 것

저자: 클레르 마랭

장르: 인문교양

번역: 황은주

출판: 에디투스

발행: 2025년 5월 12일

 

줄거리

 

클레르 마랭의 '제자리에 있다는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제자리"라는 개념을 의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제자리는 사회적으로 정해진 위치나 성공의 기준이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우리가 스스로의 몸과 삶 속에서 느끼는 감각에 주목한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는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어딘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을 받는 이유를 탐구한다. 그 어긋남은 실패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속도와 리듬이 개인의 삶과 맞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말한다.

 

'제자리에 있다는 것'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몸이다. 마랭은 인간이 머리로 이해하는 존재가 아니라, 몸으로 세계를 경험하는 존재라고 설명한다. 몸이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살아갈 때, 우리는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감각을 느끼게 된다.

 

또한 이 책은 '멈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멈춘다는 것은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리듬을 회복하는 행위다. 저자는 제자리에 있다는 감각이 외부의 인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고 있다는 실감 속에서 형성된다고 말한다.

 

이 책은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독자에게 "나는 지금 어떤 속도로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책 탐구하기

 

 

'제자리'라는 말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

세상에는 정착민, 유목민과 같이 두 종류의 사람이 산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클레르 마랭은 이것은 가짜 양자택일이며 존재한다는 것은 언제나 하나의 여정과 같다고 강조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내 자리' 혹은 '제자리'에 대해서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살면서 스스로 선택했고,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고 여겼던 자리에서 쫓겨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우리는 무너지기 보다 내가 그동안 그 자리의 한계에서 얼마나 갇혀 있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내 자리라고 말하는 이곳이 반드시 최선의 장소가 아닐 수도 있다.

 

클레르 마랭은 우리는 제자리를 잃거나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꼭 맞지 않아도 이미 속해 있는 정서, 관계적 공간에 안주하며 살아간다고 말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지금 속한 자리의 안정과 지속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으며 내면으로도 여행을 떠나며 살아가고 있다. 즉 꾸준히 '자리옮김'을 해가고 있는데, 여기서 '자리옮김'은 곧 해방이다. 클레르는 이것이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저당잡히고 족쇄가 채워진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을 자유롭게 한다고 말한다. 즉 자리 잡기보다는 자리옮김의 상태 속에 있는 것이다.

 

책은 사람들이 항상 가지고 살아가는 "도달해야 할 자리"라는 생각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우리는 정착한 삶, 정체된 삶에 길들여 있다. 실존을 그곳에 얼어붙었고 우리는 그것을 안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공간'이라는 틀을 만들어 그 공간의 분위기, 색채, 질서에 영향을 받게 된다. 이렇게 '머물 곳'을 찾고 정착한다는 것 자체가 운동을 멈춘다는 의미이고, 삶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다니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즉 '제라리'라는 말은 책에서 머물러야 할 곳, 벗어나면 안 되는 위치로  나타나 있다. 그래서 우리가 누군가에게 "드디어 제자리를 찾았구나!"라고 말하는 것 안에도 이미 보이지 않는 기준이 숨겨져 있기에, 우리는 그 말에 불편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기준에는 안정적이어야 하고, 흔들리지 않아야 하며, 더이상 이동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클레르는 이 점을 비판한다. 존재는 본래 변화하고 이동하는 과정인데 '제자리'라는 말은 그 과정을 멈추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제자리에 있다는 감각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제자리는 혼자만의 확신으로는 찾을 수 없다. 클레르 마랭은 인간은 처음부터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로, 우리 스스로 '나는 지금 잘하고 있다'고 말해도, 결국 나에게 와닿는 감각은 타인의 시선, 말, 반응과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 즉 제자리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 혼자 만들어지는 감각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도 끊임없이 확인되고 흔들리는 감각이다.

 

그러나 이런 관계가 제자리에 있다는 감각을 지탱해주는 기반이 되면서 동시에 감각을 가장 쉽게 붕괴시키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타인의 욕망과 요구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아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진다. 특히 제자리를 찾기 위해 타인의 인정에 과도하게 의존하기도 한다. 

 

사적인 관계에서조차 쓸모 있어야 하고, 역할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지게 되면, 이때의 제자리는 '함께 하는 자리'가 아니라 '조건부로 허락된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이 책이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말라'거나 '혼자만의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클레르는 관계는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제자리가 만들어지는 유일한 장'이라고 말하며, 제자리에 있다는 감각은 관계 속에서 생기지만 아무 관계 속에서 유지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잘못된 장소에 있다는 것

인생에 어떤 순간에는 무대가 잘 보이지 않는 객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하고 잘못된 자리에 앉기도 한다. 특히 내가 원하는 나와 지금 살고 있는 나의 괴리감을 느끼는 순간에 불편함은 크게 다가온다. 클레르 마랭은 이런 경험이, 어딘가 나를 위해 마련된 자리가 반드시 있다는 꿈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깨닫게 한다고 말한다. 또 어떤 자리가 딱 맞다면 우리는 거기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성취했다고 믿어왔던 '형편에 맞는' 삶은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는 '거짓된 삶'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겉으로만 행복한 '행복의 재앙'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 책은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는 모든 것이 잘맞는 환상의 자리에 머물 때보다 냉담하고 척박한 자리에 있을 때 실존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운다. 그래서 우리의 숨겨진 면모와 재능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실패와 불발의 경험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경험의 다양성을 가로막는 정해진 자리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리를 옮기며 부딪힐 기회를 선사하는 여행이 인생에 있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읽으며 가장 오래 남았던 생각

 

 

나는 끊임없이 나를 받아줄, 내가 정착할 곳을 찾으며 살아왔다. 지금도 사회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나라는 사람을 알리고, 그들의 입맛에 맞게 나를 변화시킨다. 그래야 제자리를 찾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는 반드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고, 인간의 인생은 제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말에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어쩌면 '제자리'라는 것이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살아가는 나만의 공간이 과연 나에게 적합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익숙함에 속아 적응을 해버린 것인지 돌아보게 됐다. 

 

그리고 삶에서 경험은 정말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라는 것도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안에 혼자만의 것은 없고, 타인과 함께하는 것이 거의 전부라는 것도 공감이 됐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고 그들에게 속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좋지 않지만, 그런 잘못된 경험 또한 나를 다른 곳으로 나아가게 하는 과정으로 여길 수 있게 된 것 같다.

 

책은 이렇다!하는 결론을 제시하기 보다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돌아보며 '너는 어떤 자리에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삶을 대할 것인지'를 곱씹어 보게 한다.

 

추천하고 싶은 사람

 

잘 살고 있는데도 제자리에 머무는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

 

-> 겉으로 보기에는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안정이 편안함이 아니라 정지된 느낌으로 다가온다면 이 책은 그 감각의 원인을 제대로 되짚어 줄 것이다.

 

'내 자리'를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흔들리는 사람

 

-> 스스로 선택했고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예상치 못하게 밀려나거나, 더 이상 나답지 않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다면 이 책은 경험은 실패가 아닌 존재의 과정으로 다시 해석하게 만들어준다.

 

우리의 존재는 정착, 정주, 소유가 아니라 
도약하는 충동, 운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