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
오늘은 언제 찾아올 지 모르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 죽음 앞에서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 한 권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손턴 와일더의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라는 책입니다.
에피소드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에피소드 속 개인의 삶들이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끝을 맞이하게 되었는지 탐구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간단한 책, 작가 소개와 함께 리뷰 시작해보겠습니다📖
책 소개
저자: Thornton Wilder(손턴 와일더)
번역: 정해영
출판: 클레이하우스
발행: 2025년 5월 2일
"성경에 비견되는 완벽에 가까운 도덕적 우화"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을 위로하는 불멸의 고전
소설과 희곡 부문 양쪽에서 퓰리처상을 받은 유일한 작가, 손턴 와일더의 첫 번째 퓰리처상 수상작 장편소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어느 날 찾아온 예상치 못한 비극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삶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깨닫는다. 특히 설명할 수 없는 사고로 사랑하는 이를 잃게 되었을 때, 우리는 이렇게 묻는다. "왜 하필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이 모든 것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소설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18세기 초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인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가 갑자기 무너지고, 그 다리를 건너던 5명의 여행자가 목숨을 잃는다. 이 비극적인 사고를 목격한 프란치스코회 주니퍼 수사는 희생자들의 삶을 조사하며 이들의 죽음이 신의 계획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우연이었는지를 밝히려 한다. 소설은 그들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삶의 의미와 사랑, 예술, 그리고 운명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작가 소개
손턴 와일더는 1897년 미국 위스콘신주 매디슨에서 태어났다. 소설과 희곡 부문에서 퓰리처상을 모두 수상한 유일한 작가이자, 퓰리처상을 세 차례나 수상한 20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간결한 문체로 평범한 일상 속 인간 존재와 운명, 사랑을 깊이 있게 탐구해 큰 감동을 전하는 것이 손턴 와일더 문학의 특징이다. 1927년 출간된 그의 소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출간 첫 해에만 30만 부를 판매하며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1928년에는 "독창적인 구성과 문학적 품격을 갖춘 뛰어난 소설"이란 평가와 함께 심사위원단의 만장일치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후 희곡 '우리 읍내'와 '위기일발'로 두 차례 더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희곡 작가로서도 대중과 평단의 사랑을 동시에 받았다. 그 밖의 작품으로 전미도서상을 받은 '제8요일'을 비롯한 여섯 편의 소설과 뮤지컬 '헬로, 돌리!'의 원작인 '결혼 중매인'을 비롯한 아홉 편의 희곡이 있다. 1975년 12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마지막 작품인 장편소설 '테오필러스 노스'를 발표하는 등 꾸준한 집필 활동을 이어갔다. 그의 작품들은 '문장가들의 교과서'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현대 작가에게 영향을 미쳤고,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가치, 혁신적인 플롯, 철학적인 성찰을 담아내며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전 세계의 많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줄거리 및 내용 정리 (스포주의❗)
1714년 7월 20일 금요일 정오,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라고 불리는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가 무너지며 다섯 명의 여행자가 그 아래의 골짜기로 추락했다. 이 다리는 리마와 쿠스코를 잇는 큰 길에 놓여있었고 매일 수백 명의 사람들이 건넜다. 사람들은 백 년도 더 전에 잉카인들이 고리버들을 엮어 만든 다리라며 방문객들을 구경시키고는 했다. 성왕 루이 9세의 이름과 흙으로 지은 건너편 작은 성당이 이 다리를 보호해주고 있다고 그들은 믿고는 했다. 그래서 무너질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지만, 결국 사고는 일어나고야 말았다.
이후 대성당에서 장례 미사가 열렸고 희생자들의 시신은 수습됐다. 이러한 재앙들이 잦았던 페루에서 변호사를 비롯해 시민들은 그저 평소와 같은 재난이 일어난 것이라고 여겼지만, 단 한 사람만은 이 사건을 다르게 바라봤다. 그는 바로 주니퍼 수사였다. 그는 이탈리아 북부 출신 프란치스코회 수사였고 선교 활동을 위해 페루로 왔다가 그 사고를 목격했다. 주니퍼 수사에게는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왜 하필 저 다섯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우주에 어떤 계획이 있다면 인간의 삶에 어떤 패턴이 있다면, 갑자기 중단된 저들의 삶 속에 숨겨진 불가사의한 무언가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고 믿었다.
우리는 우연히 살고 우연히 죽는 것일까
아니면 계획에 의해 살고 계획에 의해 죽는 것일까
주니퍼 수사는 대기를 가르고 떨어진 그 다섯 명의 숨겨진 삶을 조사하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그들이 그렇게 떠난 이유를 밝혀내겠다고 마음먹었다.
1. 도냐 마리아 몬테마요르 후작 부인
스페인의 학생이라면 누구나 도냐 마리아 몬테마요르 후작 부인에 대해 알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녀가 쓴 편지들은 스페인 문학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여의 생애와 그녀가 살았던 시대는 오랜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그녀는 광장에서 엎드리면 코 닿을 거리에 살면서 리마 사람들의 돈과 미움을 독차지했던 포묵상의 딸이었다. 어린시절 그녀는 못생겼지만 어머니는 사교적인 매력을 끌어내야 한다면서 비꼬는 말로 못살게 굴고는 했다. 그녀는 최대한 오랫동안 독신으로 남겠다고 다짐했지만, 스물여섯 살이 되었을 때 거만한 태도의 몰락한 귀족과 결혼을 하게 된다.
예쁜 딸이 태어나 맹목적인 숭배의 대상으로 여기며 사랑을 쏟아부었다. 그녀의 도나 클라라, 아빠를 닮아 냉정하고 이지적이었다. 마리아 후작 부인은 신경질적인 관심과 피곤한 사랑으로 딸을 못살게 굴었고 결국 클라라는 성인이 되어서 혼처 가운데 자신이 스페인으로 가야 하는 쪽을 의도적으로 선택했다. 리마에 홀로 남겨진 후작 부인의 삶은 점점 더 내면으로 침잠했다. 그녀는 갈수록 옷차림에 신경쓰지 않았고 외로운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남의 귀에 들리도록 혼잣말을 하고는 했다.
그녀의 어긋난 사랑으로 인해 모녀의 갈등은 돈과 관련된 오해로 더욱 심해졌다. 백작 부인이 된 클라라는 어머니에게 후한 용돈과 선물을 자주 받았는데, 그녀가 떠나고 4년 뒤 마리아 부인은 유럽 방문을 허락받았다. 양측 모두 그 방문을 고대했지만 한쪽은 인내심을 갖겠다는 다른 한쪽은 감정 표출을 자제하겠다는 의지와는 다르게 서로를 괴롭히고 말았다. 후작 부인은 동트기 전 새벽, 딸이 잠들어 있는 사이 배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돌아왔다. 이제부터는 편지 쓰기로 직접 나눌 수 없는 모든 애정을 대신하게 됐다.
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온갖 색깔의 사랑을 포함할 만큼 광대했지만
그 안에 폭압적인 그림자도 없지 않았으며
결국 자신이 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딸을 사랑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그녀는 자신과 딸의 사랑 사이에 가로막힌 문이 있었고, 서로 문을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인생에서든 사랑에서든 용기를 낸 적이 없었다는 것을 돌아보며 무시하고 배척하기만 했던 모녀 관계를 되짚어본다. 그리고 지난밤 편지를 떠올리며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애처롭게 물었던 과거에 수치심을 느끼기도 한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려고 마음을 먹고 리마를 향해 출발하는데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를 건너는 도중 우리가 아는 그 사고가 그들을 덮치고 만다.
2. 마누엘과 에스테반
어느날 산타 마리아 로사 데 라스 로사스 수녀원 문 앞에 쌍둥이 형제가 발견된다. 부모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수녀원장은 그들을 매우 아꼈고 수녀원 주변에서 키웠다. 헌신적인 수녀들에게 그들의 존재가 살짝 불편해질 나이가 됐을 때쯤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들은 시내에 있는 모든 성물 보관실에서 소속되어 생활했다. 이후에도 극장을 위한 연극 대본과 대중을 위한 유행가, 상인을 위한 광고를 필사하여 제법 괜찮은 돈벌이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럴수록 쌍둥이의 비밀 언어는 둘 사이의 깊은 일체감의 상징이 되었다. 암묵적인 일체감 역시 사랑이라는 말로는 온전히 표현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서로를 제외한 모든 세상이 냉담하고 이상하고 적대적으로 느껴졌다. 어느날 카밀라라는 여배우가 마누엘에게 편지 대필을 해달라며 부탁을 해왔다. 카누엘과 마누엘이 어둠 속에서 비밀을 나누고 새로운 친밀감이 형성되어 가는 동안 에스테반은 소외감을 느끼며 자신이 끝없이 작아지고 달갑지 않은 존재가 되어가는 것처럼 여겨지는 듯 했다.
"그 여자를 따라가 마누엘. 여기 있지 말고. 넌 행복할 거야. 세상 모든 사람에겐 각자의 자리가 있어"
그렇다고 그들 사이의 형제애가 사라지거나 충성도가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단지 한 사람의 마음에는 상상력이 만들어 낸 복잡한 애정을 품을 만한 공간이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의 마음에는 그런 공간이 없었던 것뿐이었다. 심지어 에스테반은 "난 네 앞길에 방해가 되고 있어"라고 말하며 어둠 속에 서있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저녁 마누엘은 쇳조각에 부딪혀 무릎이 찢어졌다. 자신의 다리가 부어오르는 것을 보고 몸 속에 고통의 파도를 느낀다. 괴로움에 휩싸인 그를 위해 에스테반은 의사가 오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 믿고 있었다.
물약과 연고를 처방받았지만 고통은 오히려 심각해져갔고 비명을 지르며 침대 위에서 격렬하게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다. 마누엘은 점차 착란 상태에 빠졌고 온전한 정신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온갖 생각들이 불쑥불쑥 과장되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결국 사흘째 되던 밤, 에스테반은 사람을 보내 신부님을 모셔왔고 마누엘은 거대한 그림자들에 둘러싸인 채 병자 성사를 받고 생을 마감했다. 그는 리마로 돌아왔고, 함께 일했던 알바라도 선장을 만나 페루에서 먼 곳으로 떠나 일을 시작하자고 제안을 받는다. 고민 끝에 그는 제안을 거절했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했지만 선장이 그를 발견해 겨우 말릴 수 있었다. 결국 다시 용기를 내어 리마로 출발했지만 산 루이스 레이에 도착했을 때 그는 다리를 건넜고 다리와 함께 추락했다.
3. 피오 아저씨
카스티야 지방 명문가의 사생아로 태어나 여배우 페리촐레의 노래 선생이자, 미용사이자, 안마사이자, 대본을 읽어주는 사람이자, 심부름꾼으로 살아간 피오 아저씨가 있었다. 그는 페리촐레를 유명한 여배우로 성장시키기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도맡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의 역할은 도우미를 뛰어넘어 인생의 스승으로서 자리매김 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의 엄격한 교육관을 따라온 페리촐레는 그를 받아들이고 성장을 이뤘지만 그의 사랑은 어긋난 방식이었다. 이후 결혼을 통해 아이까지 낳은 페리촐레는 천연두에 걸리게 되면서 모든 부귀영화를 포기하고 은둔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를 포기할 수 없었던 피오 아저씨는 그녀를 스페인으로 데려가 다시 연기를 시키려고 했지만 그녀의 생각은 너무나도 달랐다. 그녀는 자신의 삶은 물론 자식들의 삶까지 끝났다고 확신했다. 병적인 자존심 때문에 빚진 것보다 더 큰 액수를 물려주었고 그런 탓에 외롭고 암울한 그녀의 앞날에는 곧 닥쳐올 가난이라는 문제까지 겹치게 됐다. 끈질긴 피오 아저씨의 모습에 결국 그는 그녀 대신 그녀의 아들 하이메라도 데리고 가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넘겨주게 되고 아들 하이메는 피오 아저씨와 함께 먼 여행을 떠나게 된다. 하이메를 목마를 태우고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를 건너다 그들은 다리와 함께 추락하고 만다.
<다섯 명의 희생자>
도냐 마리아 몬테마르요 후작 부인, 페피타, 에스테반, 피오 아저씨, 하이메
리뷰 및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
책의 마지막 파트인 '어쩌면 신의 의도'에서는 주니퍼 수사가 그간 관찰해 정리한 다섯 명의 희생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주니퍼 수사가 이끌어낸 귀납적 결론들을 자세히 소개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늘 우리의 곁에 있는 것"이라는 모호한 대답만이 남게 되었다. 결국 모든 것들이 모여 완성된 책은 이단심문관의 눈에 띄어 책을 저자와 함께 광장에서 불태우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떠나간 이를 기리며 남겨진 사람들은 수녀원장을 찾아왔다. 그리고 수녀원장은 암흑 속에서 홀로 남겨진 이들에 대해 얘기한다.
지금 이순간에도 나 말고 에스테반과 페피타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오직 카밀라만이 그녀의 아들과 피오 아저씨를 기억하고, 오직 이 여인만이 자신의 어머니를 기억한다. 그러나 우리는 곧 죽을 것이고, 그 다섯 명에 대한 모든 기억도 지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우리 자신도 한동안 사랑받다가 잊힐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 사랑이면 충분하다. 모든 사랑의 충동은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랑으로 돌아간다. 사랑을 위해서는 기억조차 필요하지 않다. 산 잗들의 땅과 죽은 자들의 땅이 있고 그 둘을 잇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오직 사랑만이 남는다. 오직 사랑만이 의미를 지닌다.
우연인가, 의도인가?
결국 이 소설이 끝까지 묻고, 답을 찾으려 했던 것은 5명의 희생자들에게 일어난 세상의 비극이 허망한 우연의 산물인지, 아니면 초월자의 의도가 실현된 결과인지였다. 이 질문에서 주어는 '신'이다. 신이 개입한 일인가 이 개입에는 어떤 의도가 있는가, 하지만 그렇게 물으면 어느쪽을 선택해도 쉽게 정당화할 수 없는 대답만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손턴 와일더는 질문 자체를 바꿔서 '신은 왜?'가 아니라 '인간은 왜?'로 사건을 바라본다. 결국 우연이든 의도이든 중요한 건 인간은 죽음을 어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의 마음 속에 영원히 기억된다는 것...>
사랑은 결국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통해 증명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살아갈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사랑이 상대가 떠나간 후에 유독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그 사람이 나에게 남긴 기억때문일 것이다. 책에서도 에스테반, 페피타, 피오 아저씨, 하이메, 후작 부인 이 5명을 기억하고 기리는 것은 그들과 살아생전 사랑, 갈등, 집착, 애증과 같은 감정을 나누었던 사람들 뿐이었다. 하지만 이들을 기억하는 남겨진 사람들도 곧 죽음을 맞이해 떠나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상에 남겨진 5명의 기억들은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사랑을 받다가 결국 잊혀지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지상에서 나의 존재와 내가 담긴 기억들이 사라졌다고 해서 나는 무의미한 누군가로 살아간 것일까? 책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소설은 그정도의 사랑이면 충분했다고 자신있게 말하며, 떠나보내고 살아가는 사람과 떠나간 사람들을 잇는 다리는 결국 사랑이라고 써내려간다. 그 다리는 삶의 시작과 끝에 형성되었고 세상에 떠도는 나를 향한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해도 다리에 남긴 사랑은 남는다. 오직 그 사랑만이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내가 지금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사랑은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나의 끝까지 함께할 것임을 의심치 않기에 그 사랑을 충분히 받아들이면서 살아갈 것이다.
<사랑보다 사랑하는 방법이 더 중요한 이유>
첫 번째, 도냐 마리아 후작 부인은 딸을 정말 많이 사랑했지만 정작 사랑하는 방법은 몰랐던 것 같다. '많이' 사랑했지만 '잘' 사랑하는 법을 몰랐기에 모녀 사이의 갈등의 골은 깊어져만 갔다. '사랑해'라는 말을 '사랑해 줘'라는 말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말은 즉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로 하여금 사랑을 갈구하는 것과 같다. 이 역전된 요구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후작 부인 역시도 사랑 없는 집착과 요구 속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그것만이 사랑이라고 생각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자식은 '소유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성숙한 '체념'을 배우게 되면서 그녀의 사랑에 대한 생각은 변화를 맞이한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늦어버렸을 뿐이다.
두 번째, 마누엘과 에스테반 역시도 서로 사랑했지만 '잘' 사랑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지만, 그 사이에 제3자가 끼어들었을 때 우리 사이에도 빈틈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어버렸다. 그것을 인정하고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가 그들이 찾았어야 할 부분이지만 결과는 아이러니한 비극으로 흘러갔다. 마누엘이 자신의 사랑을 '희생'이라고 했지만 에스테반은 마누엘을 얻지 못하고 영원히 '상실'하고 만다. 상실 앞에서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 타인이 내민 손을 붙잡게 되고, 나름의 위로법을 찾아가지만 너무 늦어버렸다.
세번 째, 피오 아저씨는 카밀라를 사랑했지만 '잘' 사랑하지 못했다. 카밀라가 자신의 엄격한 교육관 속에서 성숙하게 자라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상대가 느끼는 고통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실감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을 인내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을 향한 충성심과 사랑을 측정했다. 하지만 아무리 붙잡으려고 해도 손에서 새어나가는 모래처럼 욕심을 내면 낼 수록 멀어져만 가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사랑을 주는 것보다 상대로부터 자신을 향한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하기만 하면 상대는 절대 내가 원하는 결과를 내어주지 않는다. 예술을 위해 '사랑의 고통'이 필요하다는 명분도 소용없어진 순간 지금껏 자신이 카밀라에게 준 것은 사랑이 아닌 억압이었다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의 깨달음도 너무 늦어버렸다.
다시 시작해보기 위해 사랑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왜 하필 죽음 이전에 찾아왔을까. 어쩌면 '왜 하필'이라는 말은 핑계이고 사랑 앞에서 사랑을 말할 용기, 도망치지 않을 용기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고, 끝에 도달했을 때 왜 하필 지금 이 마음을 알게된 것인가 생각이 드는 순간 결국 너무 늦어버렸다는 사실에 슬퍼지기만 할 것이다. 즉 내가 지금 낼 수 있는 용기는 적금처럼 만기가 돌아오면 찾아 쓸 수 없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오늘 당장 용기를 내지 않으면 내일은 꼭 진실해지자고 다짐하는 평범한 나날만 지속되다 우린 죽게 된다. 이 작품이 독자들에게 묻는 또 다른 질문은 '지금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이다.
옮긴이의 말을 빌려 후기를 남겨보려고 한다. 이 소설의 흥미로운 점은 등장인물 인생 하나하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그저 가치있는 삶과 그렇지 못한 삶으로 분류하고 단정짓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연과 복잡한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인생의 가장 큰 의미는 결국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책을 덮고 난 후 이 작품이 결국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속 모든 인물은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갈구하고 있지만 그토록 갈망했던 사랑을 죽음으로써 얻게 된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 마지막까지 그토록 바랬던 것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진심으로 믿어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어찌 보면 한치 앞도 모르고 살아가다 준비 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얕게 기억되다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한동안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의 사랑받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삶이 가치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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