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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소설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_줄리언 반스

by 나연 킴 2025. 2. 12.

안녕하세요😊

오늘도 흥미롭게 읽은 책이 있어서 여러분께 한 권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줄리언 반스의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입니다.간단한 책 소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리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자: 줄리언 반스

번역: 정영목

출판: 다산책방

발행: 2024.09.02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줄리언 반스의 신작 장편소설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가 다산책방에서 번역 출간됐다. '연애의 기억' 이후 국내에 6년 만에 선보이는 줄리언 반스의 작품으로 "이것이 줄리언 반스다"라는 극찬과 함께 다시 한번 그만이 가능한 독보적인 이야기로 문학적 성취를 거두었음을 증명했다.

소설은 결혼생활과 직업적 실패를 겪고 고비를 맞은 한 남자가 삶에 큰 영감을 주는 교수를 운명처럼 만나면서 시작한다. 언제나 압도적으로 일인칭 화자를 내세워 강력한 질문을 던지는 줄리언 반스는 이번 작품에서도 '닐'이라는 화자를 앞세워 매혹적인 허구의 인물 엘리자베스 핀치 교수와 역사의 승자에 의해 배교자로 불리는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에 대해 탐색해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생각지 못했던 물음에 직면하게 한다.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이 맞는가?'

어느덧 여든에 가까운 줄리언 반스가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동안 글을 쓰며 천착해 온 화두의 정수가 모두 담긴 이 소설은 픽션과 논픽션을 과감히 넘나드며 기억의 한계와 역사의 왜곡, 그리고 인간과 삶의 다면성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펼쳐낸다. 누군가는 이 작품을 두고 장르 불명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줄리언 반스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 말고는 달리 무어라 정의 내릴 수 없다. 감히 줄리언 반스 40년 문학의 결정판이자 그의 문학적 지문과도 같은 작품이다.

 

작가 소개

 

 

줄리언 반스는 1946년 1월 19일 영국 중부 레스터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현대 언어를 공부했고 졸업 후 3년 간 '옥스퍼드 영어 사전' 중보판을 편찬했다. 이후 유수의 문학 잡지사에서 문학 편집자로 일했고, '옵서버' '뉴 스테이트먼츠'의 TV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1980년 첫 장편소설 '메트로랜드'로 서머싯 몸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해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 '플로베르의 앵무새' '태양을 바라보며' '10 ½장으로 쓴 세계 역사' '내 말 좀 들어봐' '고슴도치' '잉글랜드, 잉글랜드' '용감한 친구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시대의 소음' '연애의 기억' 등 열세 권의 장편소설과 '레몬 테이블' '크로스 채널' '맥박' 세 권의 소설집을 펴냈다.

 

그 외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빨간 코트를 입은 남자' '줄리언 반스와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등의 에세이와 논픽션을 썼다. 자국인 영국을 비롯해 미국 그리고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대부분의 문학상을 석권했다. 메디치상, 페미나상, E.M.포스터상, 구텐베르크 상, 그린차네 카보우르상, 셰익스피어상, 오스트리아 국가 대상, 데이비드 코헨 문학상, 지크프리트 렌츠상, 예루살렘상, 야스나야 폴랴나상 등을 받았다. 프랑스 정부로부터는 이례적으로 1988년, 1995년, 2004년, 2017년 네 차례에 걸쳐 문예 훈장을 받았다.

 

줄거리

 

 

두 번의 이혼을 겪으며 삶에 회의감을 느끼던 닐은 우연히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 강좌에서 다른 교수와는 다른 느낌을 가진 엘리자베스 핀치 교수를 만난다. 거위 배 속에 사료를 채우듯이 사실만을 주입시키는 교육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녀의 말에 닐을 비롯해 일부는 경외감에 젖거나 소수는 짜증에 가까운 어리둥절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녀는 노트를 보고 강의하지도 않았다. 모든 게 완전히 정리 된 상태로 그녀의 머리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수업을 들으며 닐은 점차 호기심을 느꼈고 그녀를 만나고 알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함을 갖기도 했다. 

이후 그는 졸업 이후 약 20년이 지나도 그녀와의 인연을 이어나갔다. 75분이라는 정해진 시간동안 점심을 함께 먹으며 두 사람은 철학과 역사에 대해 깊이 토론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핀치 교수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되고 닐은 그녀의 동생으로부터 그녀가 자신에게 남긴 유품이라며 서류와 노트 들을 받게 된다. 그는 그것을 통해 그녀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따라가려고 하고 그녀가 관심있게 연구하고 지켜보던 것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점차 진지한 탐문을 하기 시작하다 이전에 미완성 프로젝트로 남겨졌던 배교자 율리아누스에 관한 에세이를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된다. 또 그녀를 계속 기리기 위해 그녀의 회고록을 써보려고 끊임없이 탐구를 이어갔다. 그러면서 그는 점차 파고 파도 확실치 않은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녀가 말한 대로 우리는 늘 우연이라는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이 책은 우연한 만남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내가 모든 걸 다 이해했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무력하고 의미없는 것인지 깨닫게 한다. 또 역사는 기록에 남겨져 있지만 결국 살아있는자의 해석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 눈 앞에 과감히 펼쳐놓는다.

 

책 리뷰

 


이 책 안에서 엘리자베스 핀치는 닐이 그렇게도 잡고 싶었지만 잡히지 않는 특별한 존재로 그려진다. 그녀는 학생들 앞에 섰을 때 일말의 긴장과 거짓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학생들의 생각이나 제안도 하찮거나 감상적이거나 대책 없을 만큼 자저넉이라는 이유로 물리치지도 않았다.

"물론 우리는 이 수업에서만이 아니라 밖에서도, 우리 자신의 격동적이고 안달 나는 삶에서도 우연이라는 요소를 고려해야 해요. 우리가 깊이 만나는 사람의 수는 이상하게도 적어요. 열정은 우리를 맹렬하게 현혹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이 뜻하지 아니하게 일어난 일'을 두고 과한 힘을 들여 그것을 파내려고 하고 필연성의 결핍 그 뒤를 알아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고 어떤 일은 우리가 해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우연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배교자 율리아누스에 대한 닐의 연구와 탐구 부분도 이 책 안에서 에세이 형식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핀치 교수는 율리아누스가 페르시아 사막에서 죽은 것에서 시작하여 그것이 이교 신앙과 헬레니즘에 참사라고 이야기했다. 유대인과 이슬람교도에 대한 수치스러운 박해와 추방. 우리의 도덕적 태도와 행동의 원천은 우리 대부분이 의식하는 것보다 먼 과거에 있다는, 그러나 '배교자' 율리아누스의 짧은 치세로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는다는 그녀의 근본적 믿음이 그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녀가 이러한 역사적 믿음과 해석을 가지게 된 것에 사람들은 비난의 돌을 던지기도 했다. "미친 여교수 로마 황제가 우리 성생활을 망쳤다고 주장"이라는 자극적인 표제와 함께 기사가 실리면서 사람들은 그녀의 주장에 대한 여러 해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녀가 일신교를 공격한 것을 두고 한 논설위원은 "우리 문화의 문명을 똥개화하는 데 헌신하는 태도로서 코스모폴리탄 지식인 계급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여기에 온갖 그녀를 향해있던 온갖 추문이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과거 그녀의 제자를 찾아내, '그녀가 강제수용소에서 죽은 친척들을 '과시'하면서 전사한 제자의 아버지를 조롱한 적이 있다' '히들러의 탁상 담화를 읽자고 제안했다'는 등의 기억에서 조작된 말들이 그녀를 휘감기도 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정확한 진실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머리에서 나와, 각자의 해석이 묻어나온 사실인 척하는 말들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는 쪽을 택해요"

핀치 교수는 이를 두고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다. '일어날 수도 있었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난 일과 마찬가지로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그녀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행동이었다.

여기서 닐은 엘리자베스 핀치를 사랑했던 것을 인정하기도 한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깊이 또 잘 알고 있다 해도 그 사람에게 놀라게 되는 것이 사랑의 속성이다'라고 말하며 그녀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 핀치 교수는 자신이 평생 만난 가장 어른스러운 사람이었다며.

하지만 그녀의 삶이 끝나도 알아가려 할수록 자신의 기억 속에 남겨진 모습과 다른 모습의 그녀를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되면서 그는 혼란을 느낀다. 

"나는 EF가 나에게 일반적 유산 외에 구체적 유산도 남겼음을 깨달았다. 단어와 표현이라는 유산, 내가 반드시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오랜 세월 나를 따라다니게 될 생각들이라는 유산"

그녀가 그에게 남긴 것은 단순히 서류, 기록과 같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그로 하여금 자신을 떠올리게 만드는 갖은 생각들이었던 것이다. 그 생각들의 진실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서도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 

최근 율리아누스의 전기를 쓴 사람조차 그의 명확한 기획에도 실패했고, 그 사람은 심지어 대부분이 결국 자신의 '착각'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모래에 발자국을 남기지만 다음 바람이 쓸어가 버릴지도 모른다"

수많은 우연이 스쳐지나간 그녀의 삶은 그저 그의 고집스러운 기억에만 존재할 뿐이었다. 사실 사람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본다. 편하게 사람다운 삶을 살고 싶으면, 자신의 역사를 잘못 알면 된다. 

"내가 엘리자베스 핀치를 '알고' 또 '이해하는' 것은 율리아누스 황제를 '알고' 또 '이해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 없을 것이다"

사실 그가 그녀의 인생을 책으로 재구축할 시도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도 운이었다. 운이, 우연이 자기 뜻대로 하게 놓아두기로 그는 결심했다. 어떻게 해볼 수 없었던 엘리자베스 핀치의 기록들은 그때 그녀의 시간 속에 남겨두기로 했다. 그는 우연히 그녀를 알게 되었고, 그녀와 긴밀한 만남을 가지고 생각을 나눈 것도 운이 좋았던 일인 것이다. 곱씹어 생각해도 그 우연과 운은 변하지 않고 변화시킬 수도 없다. 혹여 그녀와 닐의 모든 일들이 다른 누군가의 수첩에 남겨져 또 다른 누군가의 서랍 속에 갇힌다고 해도 그 또한 우연일 뿐이니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잡히지 않는 것에 현혹되느니 편하게 자유와 행복을 얻는 것을 택하는 삶이 핀치가 원한 삶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깊은 구절

 

P38.
그는 덧없는 것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꺾은 꽃이 시들기 시작하기 직전의 그 순간에 매달리고 있죠.

우리는 꽃을 꺾음으로써 꽃이 더 빨리 죽게 합니다.
우리는 꽃을 그림으로써 꽃이 버려진 뒤에도 그것을 오래 보존합니다.
그 지점에서 예술은 현실이 되고, 원래의 꽃은 그저 짧은 시간에 존재한,
이제는 잊힌 환영이 되죠.

 

 별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