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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에세이

숨결이 바람 될 때_폴 칼라니티

by 나연 킴 2025. 4. 14.

안녕하세요😄

오늘은 읽고 나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책 한 권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숨결이 바람 될 때'라는 에세이인데 젊은 나이에 암 선고를 받고, 용기있게 투쟁해 나가면서 삶을 지키는 한 의사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실제로 작가분이 암 투병 중에도 책을 집필하겠다는 강인한 의지를 가지고 책을 완성시키셨다고 하는데요. 물론 완벽하게 마무리되지 못한 미완성작이기는 하지만 자전적인 이야기가 깊게 담겨있어 한 사람의 뜨거운 삶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럼 본격적인 책 소개와 함께 리뷰 시작하겠습니다 📖

 

 

저자: 폴 칼라니티

번역: 이종인

출판: 흐름출판

발행: 2024. 11. 22

 

2016년 출간된 이후 국경을 초월해 수많은 한국 독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던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가 2024년 드디어 100쇄 기념판을 선보였다.

신경외과 의사로서 치명적인 뇌 손상 환자들을 치료하며 죽음과 싸우다가 자신도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죽음을 직면하게 된 서른여섯의 젊은 의사 폴 칼라니티. 그가 써내려간 마지막 2년의 기록인 '숨결이 바람 될 때'는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아마존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12주 연속으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켰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저자 아툴 가완디는 "삶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감동적이고 슬프고 너무 아름다운 책"이라고 평하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죽어가는 대신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 고뇌와 결단, 삶과 죽음, 그 의미에 대한 깊은 성찰, 숨이 다 한 후에도 지속되는 사랑과 가치에 대한 감동적인 이 이야기는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가치가 과연 무엇인지를 독자들에게 일깨워준다.

 

저자

 

 

책의 저자 폴 칼라니티는 1977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공부했고, 영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문학과 철학, 과학과 생물학에 깊은 관심을 보이던 그는 이 모든 학문의 교차점에 있는 의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케임브릿지 대학에서 과학과 의학의 역사 및 철학 과정을 이수한 뒤 예일 의과 대학원에 진학해 의사의 길을 걸었다.

 

졸업 후에는 모교인 스탠퍼드 대학 병원으로 돌아와 신경외과 레지던트 생활을 하며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했다.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미국 신경외과 학회에서 수여하는 최우수 연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고의 의사로 손꼽히며 여러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받는 등 장밋빛 미래가 눈앞에 펼쳐질 무렵, 그에게 암이 찾아왔다. 환자들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 오던 서른여섯 살의 젊은 의사가 하루아침에 자신의 죽음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의사이자 환자의 입장에서 죽음에 대한 독특한 철학을 보인 그는 힘든 투병생활 중에도 레지던트 과정을 마무리하는 등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다. 약 2년간의 투병 기간 동안 '사간은 얼마나 남았는가' '떠나가기 전에'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각각 뉴욕타임스와 스탠퍼드메디슨에 기고했고, 독자들의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15년 3월 아내 루시와 딸 엘리자베스 아카디아 등 사랑하는 많은 사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리뷰

 

 

의사에서 환자로

책 속에서 암세포 전이로 극심한 요통과 고통을 느끼는 폴은 처음으로 통증을 의사의 입장이 아닌 직접 겪는 환자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요통에 대해서 해부학적, 생리학적으로는 잘 알고 있었다. 환자들은 제각기의 고통을 제각각의 단어로 표현하며 호소한다. 하지만 나는 그 고통이 실제로 어떤 느낌인지 알지 못했다."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했던 이론적인 부분으로는 통증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직접 겪어본 적은 없었기에 그는 자신이 느끼는 고통과 조짐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너무나도 이론과 자신의 상황이 잘 맞아 떨어져서 '암'이라는 단어를 인정하고 싶지도,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도 않았을 수도 있다.

 

환자용 플라스틱 팔찌를 끼고 익숙한 연푸른색 환자복을 입은 그는 상황적 아이러니함을 느낀다. 며칠 전만해도 환자들에게 말기 진단을 내리고 복잡한 수술에 대해 설명하던 공간에서 자신이 환자가 되어 누워있는 주객전도 상황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다가 젊은 간호사가 들어와 그에게 건낸 한 마디가 그가 실현시키고 싶었던 미래, 오랜 세월 부단히 노력해 도달하려 했던 삶의 정점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곧 오실 거예요"

 

 

의사와 환자의 관계성

폴은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영문학 석사 과정을 지내면서 '언어'에 대한 힘을 알게 된다. 언어는 고작 몇 센티미터의 두께의 두개골에 보호받는 우리의 뇌가 서로 교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단어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의미가 있으며, 삶의 의미와 미덕은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의 깊이와 관련이 있다. 이런 과정은 뇌와 신체 그 자체의 생리적인 명령에 따라 일어나며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는 열정, 갈망, 사랑 등 우리가 체험하는 삶의 언어가 신경 세포, 소화관, 심장박동의 언어와 연관되는 뭔가 복잡한 방식이 틀림없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다."

 

뇌와 삶은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의사의 길을 걷기 위해 의과 대학원에 진학한다. 의과 대학원을 다니면서 의미, 삶, 죽음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게 된다. 특히 인간의 관계성이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도 실현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루시와 함께 심전도 파형을 공부하던 중 치명적인 부정맥을 보고 그녀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이 심전도가 누구의 것이든, 환자는 살아남지 못할 운명이었고 페이지 위의 구불구불한 선은 단순한 선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의사는 죽음의 시간과 방법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일을 충실히 해내야 한다. 환자의 삶과 죽음 사이에서 중대한 판단을 해야하고, 의사다운 판단은 과연 무엇인지 늘 연구해야 한다. 물론 의사도 사람이기에 환자의 이익보다 의사의 이익을 중시하는 면을 강조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 자기중심주의가 의학의 본질에 상반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주장에 합리적인 면도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99퍼센트의 사람들이 연봉, 근무 환경, 근무 시간을 고려하여 직업을 선택한다. 그러나 원하는 생활방식에 중점을 주고 선택하는 건 직업이지 소명이 아니다."

 

하지만 폴은 곧 암을 선고받을 한 아이에게 진료 결과를 설명하는 한 외과의를 보고 생각의 전환을 하게 된다. 그는 예정된 수술, 예상되는 결과와 가능성, 당장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항 등을 설명하기 이전에 가족들에게 '앞으로 기나긴 싸움이 될 거예요' '이런 큰 병을 만나면 가족은 하나로 똘똘 뭉치거나 분열하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되죠.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서로의 위해 각자의 자리를 잘 지켜야 해요'라는 등의 말을 전했다. 결국 의사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상황에 직면하는 환자에게 단순히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아닌 어느 쪽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논하게 해야한다. 그가 가장 도전적으로 또한 가장 직접적으로 의미, 정체성, 죽음과 대면하게 해줄 것 같은 신경외과를 선택한 것이 그 이유다.

 

 

수많은 죽음을 바라보며

그가 처음으로 환자를 잃었을 때 죽음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그녀는 여든 둘의 노인으로 몸집이 작고 깔끔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장 폐색성 변비로 입원을 했다. 엿새를 기다린 후 막힌 장을 뚫어주는 간단한 수술을 진행했다. 이후 그녀의 정신은 맑아졌고 몸 상태도 좋아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상태가 심각해져 결국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부인을 살리기 위해 약물과 수액을 공격적으로 투여했다.  겨우 그녀를 진정시키고 다음날 오후 일곱 시경 그녀가 심정지를 일으켜 심폐소생술을 시도 중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고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했지만  여덟 시가 되자 그녀가 사망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폴은 이 과정에서 수술 과정에서 그녀의 장기를 만지는 손을 세밀히 살피며 창자에 묶었던 매듭을 계속 확인했다. 그때부터 그는 환자를 서류처럼 대할 것이 아니라 모든 서류를 환자처럼 대하기로 결심한다. 

 

"신경외과는 뇌와 의식만큼이나 삶과 죽음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아주 매력적인 분야였다. 나는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에서 일생을 보낸다면 연민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스스로의 존재도 고양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

의사로서 수많은 죽음을 마주치고 환자들에게 암 진단을 내리던 그가 폐암 말기가 확정됐을 때 아내에게 한 말은 "나는 죽고 싶지 않아"였다. 그는 이제 사람들이 삶의 과도기를 잘 넘기도록 도와주는 목자의 자격을 반납하고,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양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다가 에마라는 주치의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최고의 실력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환자를 잘 배려하는 것은 물론이고 병의 경과에 따라 치료를 언제 진행하고 보류해야 하는지 잘 파악하기로 유명했다.

 

폴과 처음 만날 당시에도 앞으로의 치료 과정이나 계획을 설명하는 것이 아닌 그의 '복직'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그는 그녀가 망상에 빠졌다고 생각했고 현실적인 생존 가능성은 재보지도 않고 복직 얘기를 꺼낸 것에 의문을 가진다. 

 

"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통렬하게 자각한다. 그 문제는 사실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폴은 희망의 끈을 놓으려고 하지 않고 정자은행으로 찾아가 건강한 아이를 낳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통계 자료와 자신과의 관계는 자신이 환자가 되자마자 달라졌고, 삶의 정체성은 뇌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신체 안에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제 죽음과 마주한 채 삶을 가치있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환자가 아닌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야 했던 것이다. 죽음과 마주하면서 예전의 삶을 복원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인지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폴이 생각하는 의사의 일은 삶과 죽음 두 개의 선로를 잘 연결하여 환자가 순조로운 기차 여행을 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죽음을 대면하는 일이 이토록 혼란스러운 지 그는 몰랐을 것이다. 그는 암 투병 중에도 레지던트 생활을 마무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병을 앓게 되면서 의사로서의 가치관도 끊임없이 변화하게 되고, 또 환자로서 자신에게 중요한 게 뭔지 알아내기 시작한다. 

 

죽음은 단 한 번 있는 일이지만, 불치병을 안고 살아가는 건
계속 진행되는 과정이다.

 

밤 늦게까지 일하고 수술을 하면서 의사로서의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조금씩 호전되는 상황에 안심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자신의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충격에 빠진다. 새로운 커다란 종양이 우중엽을 채우고 있던 것이다. 죽어가던 세포에 이제 희망이 생기나 했는데 오래 살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지고 만 것이다. 어쩌면 신경외과 근무도 몇 주 혹은 몇 달 어쩌면 평생 못할 수도 있게 됐다.

 

본격적으로 에마와 폴은 암 치료에 대한 더욱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 과정에서 에마는 폴에게 당신이 의사라서 병에 관해 너무 잘 알고 있고, 이건 당신의 인생이니까 내게 의사 역할을 맡긴다면 그것 역시 기쁘게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그는 의사 시절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몸에 대한 치료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의사인 폴이 환자인 폴을 책임지려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폴은 아직까지도 환자인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자신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해줄 주치의가 있음에도 자신의 병을 자신의 시각에서만 바라보려고 한다는 점과 환자가 아닌 치료시켜야 할 대상으로 자신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그를 더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했다. 물론 그가 환자가 되어 의사를 바라볼 때 의사라는 직업의 역할과 그에 맞는 갖춰야 할 태도는 무엇인지를 다시 되짚어보기도 한다. 특히 그의 후배 레지던트 브래드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그는 환자인 폴에게 자신의 의견을 펼치며 에마의 치료법을 제대로 따르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한 환자가 내게 말하기를, 의사를 만나러 갈 때 항상 가장 비싼 양말을 신는다고 했다. 신발도 못 신고 환자복만 걸치고 있으니 양말이라도 제대로 된 걸 신어야 의사가 자기를 중요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존중해준다는 것이었다."

 

하루밤 사이 폴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다. 검사를 받아보니 혈청 나트륨 수치가 거의 치사 수준이었고 결국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는 의식이 뚜렷한 상태에서 최대한 불협화음을 내는 여러 목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했다.

 

 

의사도 희망이 필요한 존재

힘겨운 시간을 보내던 폴에게 에마가 찾아온다. 에마는 출장 중에도 폴의 소식을 메일로 전해들으며 연락을 주고받았다. 폴이 에마에게 "전에 당신은 의사, 나는 환자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셨죠?"라고 물었다. 그리고는 좋은 생각이라며 아무리 좋은 책을 찾아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 현실을 인정한다. 자신의 생명의 끝을 놓지 않고 책임을 지려고 하는 태도는 누구나 필요하고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자신이 환자가 되어 엄청난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그러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의사로서 환자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는 것은 소명이지만 환자로서 병을 자각하고 주치의에게 자신의 기차 운전대를 맡기는 것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지금 내가 탄 배의 선장은 에마였고, 그녀는 내 입원 뒤 일어난 온갖 혼란을 평온하게 가라앉히고 있었다."

 

의사에서 환자가 되었음을 인정한 순간 그는 이윽고 마음의 긴장이 풀리고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도 '내가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 필요한 존재다. 죽음 앞에서 선고를 내리는 제3자가 아닌 선고를 받는 당사자가 되었을 때 안타깝게도 의사는 세계의 수많은 환자 중 한 사람이 되고, 자신의 현실을 자각해야만 한다. 오늘과 내일을 구분하기 힘들어지고,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아무 의미가 없게 되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모든 사람은 유한성에 굴복하기 때문이다. 미래는 이제 인생의 목표를 향해 놓인 사다리가 아니라 끊임없이 지속되는 현재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폴이 세상을 떠나기 전 딸 케이티에게 남긴 메시지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그의 아내 루시 칼라니티의 이야기

 

 

책의 에필로그에는 폴의 아내 루시 칼라니티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가 병실 침대에서 모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아내의 시점에서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는 병과의 싸움 중에서도 책을 쓰는 행위를 포기하지 않았고 남은 시간 가족들과 충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가장 마음이 아팠던 지점은 그가 갑자기 열이 40도로 오르고 몸이 심각하게 안좋아지던 밤 루시가 그가 잠든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었다.

 

"그가 잠든 모습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조용히 거실로 나오니 시아버지도 눈물을 닦고 있었다. 나는 벌써부터 그가 그리웠다."

 

특히 루시가 폴을 향한 자신의 사랑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진정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서로에게 친절하고 너그럽게 대하며, 감사의 마음을 품는 것이라는 글귀가 잊혀지지 않았다. 환자 자신도 병마와 싸우며 힘든 시기를 보내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주변에 모든 사람들은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고통스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슬픔을 어떻게 감당하고 앞으로를 어떻게 살아나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아내 루시는 누군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똑같이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는, 또 끔찍한 슬픔과 비통함의 무게를 못 이겨 때로 몸을 떨며 한탄하면서도 여전히 큰 사랑과 감사를 계속 느낄 수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폴이 떠난 뒤에도 여전히 매순간 그와 함께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었고, 죽음에 끝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폴의 모습을 인간적으로 존중했다.

 

인상깊은 구절

 

우리는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점근선처럼 우리가 완벽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있다.


생과 사는 떼어내려고 해도 뗄 수 없으며,
그럼에도, 혹은 그 때문에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초반에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그저 의사에서 환자가 된 한 젊은 의사가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겠거니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의사와 환자 사이의 인간적 관계를 뛰어넘은 한 사람으로 태어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어떻게 가치있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늘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그 끝에 다다랐을 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뒤로 미뤄두는 편이다.

 

어쩌면 지금 나의 현실과는 아주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아직까지 죽음이라는 생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어렵고 설명하기 힘들게 다가온다. 하지만 만약 지금 내 앞에 마지막을 직면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물론 벌써부터 끝을 바라볼 필요는 없지만 책에서 나와있듯이 생과 사는 뗄 수 없는 관계로 이어져있기 때문에 항상 우리는 마지막을 고려해야한다.

 

이러한 모든 것을 고민해보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도 큰 가치를 지닌다. 죽음 즉 삶의 마지막을 떠올리고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고민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지금 내 삶과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마지막을 앞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은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열정적이다. 그리고 최대한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내가 하고 싶어 하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내가 지금까지 뭘 놓치고 살아왔는지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의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내 안에는 칭찬해주고 싶은 내 모습도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도 있기 때문이다. 나를 받아들이는 것도 사람마다 각양각색이다. 누군가는 아파서 아무것도 못하는 내 모습을 나약한 나로 받아들여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는 사람이 있고, 다른 어떤 사람은 아프지만 어떻게든 더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미래를 기약하는 사람이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아프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책 속에서 폴에게 배우고 싶은 점은 자신의 현 상황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어떻게 더 오래살 수 있을까'보다 '나에게 가치있는 것이 무엇이고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는 것이다. 

 

그는 죽음 앞에 무너진 것이 아니라 그 끝을 받아들인 것이고, 끝을 마주하게 된 순간부터 그의 삶은 가치있는 모든 것들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별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