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책 한 권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바로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맞이하는 여러 사랑의 유형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고, 그 사랑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지를 연구한 책입니다. 철학 책이지만 따뜻한 에세이 한 권을 읽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요.오늘도 역시 간단한 책 소개를 시작으로 리뷰를 진행하겠습니다❗
저자: 에리히 프롬
번역: 황문수
출판: 문예출판사
발행: 2019.09.01
에리히 프롬의 마지막을 함께한 라이너 풍크 박사의 '사랑의 기술' 50주년 기념판에 부치는 글 수록
'사랑'은 기술인가 독일 태생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철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인류의 영원한 화두인 사랑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프롬이 던진 이 질문은 '사랑의 기술'이 출간된 지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의 의미를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사랑의 기술'이 얼마나 많은 독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는지는 1956년 첫 출간 이후 34개 언어로 번역되었다는 사실과, 전 세계에서 수백만 부 이상 판매되면서 우리 시대의 대표적 스테디셀러이자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문예출판사는 이번에 새로운 표지로 바꾼 '사랑의 기술' 개정판을 출간했다.
저자, 에리히 프롬은 누구인가
에리히 프롬은 독일 태생 미국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철학자, 1922년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뮌헨대학교와 베를린의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정신분석을 연구했다. 1933년 나치 치하의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할 즈음 정신분석학자로서 높은 명성을 얻었으며, 미국에서는 정통 프로이트학파와 대립하기도 했다. 컬럼비아대학교, 베닝턴대학교,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 미시간주립대학교, 뉴욕대학교 등에서 정신분석학을 강의하면서 인간의 욕망에 의한 사회와 개인 간의 갈등에 주목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프로이트주의, 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 종교 등에 대한 비판적 저서와 인간본성, 윤리학, 사랑에 대한 프롬의 방대한 저작은 사회과학자들과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주요 저서로서는 '자립적 인간' '정신분석과 종교' '자유로부터의 도피' '건전한 사회' '사랑의 기술' '희망의 혁명' '인간의 마음' 등이 있다.
에리히 프롬의 삶과 사랑- 라이너 풍크
50년 전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을 출간했을 때, 그는 '사랑'과 '사랑의 능력'이라는 주제로 책을 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최초의 학자였다고 한다. 프롬과의 사적인 대화에서 소통의 특별한 점은 프롬이 상대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관심을 보이며 그를 대신하여 직접 질문을 던짐으로써 직접성과 친밀성을 형성한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질문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에서는 그와의 대화가 갖는 또 다른 특수성이 드러났다. 그의 질문을 받았을 때 벌겨벗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결코 망신을 당하거나 비난 또는 비방을 당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고 한다.
프롬의 유년기와 청년기에 각인된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
그는 1900년에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 독자로 태어났다. 에리히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 나프탈리 프롬은 서른 살이었다. 그의 직업은 대부분 선조들과는 달리 유대 신학자가 아니라 딸기 와인 상인이었다. 소심하고 핵가족에 매우 속박된 편이었던 그는 직업 때문에 열등감에 시달렸고 아들이 탈무드 학자의 계보를 잇는 데 모든 희망을 걸었다. 에리히에 대한 사랑은 다정한 애전과 불안한 배려가 혼합된 매우 양가적인 이상화의 모습이었다.
프롬의 어머니는 그가 태어나던 당시 스물네 살이었다. 그녀는 아버지보다는 신앙심이 덜한 집안 출신이었고, 재미있고 붙임성 있으며 가족 내에서 실권을 쥔 여자로 통했다고 한다. 그녀는 유일한 자식을 위해 헌신했다.
위의 사진에서 보면 프롬의 어머니는 오른팔로 아들의 팔짱을 끼고 기대로 충만한 시선으로 감탄하면서 아들의 얼굴을 보고 있다. 프롬 자신이 나중에 고백했듯이 어머니는 그가 위대한 예술가이자 학자, 말하자면 제2의 파데레프스키가 되기를 바랬다. 그런 과도한 이상화는 처음에는 굉장한 자신감과 강한 자의식을 형성한다. 어떤 사람들은 거만하다고도 말하는 30, 40대 때의 프롬의 자신감 있는 태도는 어머니의 자아도취적 사랑이 갖는 이러한 국면에서 유래한다. 실제로 프롬은 그를 이상화하고 집착하는 이러한 모성애를 벗어던지려고 오랫동안 투쟁해야 했다.
사랑하는 능력을 갖기 위한 투쟁
부모의 사랑이 장해가 되고 자기발달을 방해하는 작용을 하면 할수록, 새롭고 대안적인 사랑을 경험하고자 하는 탐색 끝에 얻은 새로운 관계에서마저 익히 알고 있는 부모와의 관계 패턴이 쉽게 재현되고 만다. 프롬이 인생에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부단한 소망은 몇 번의 실패를 반복하며 중년 후반기까지 나타난다. 그는 청소년기에 이미 뵈르네 광장에 있는 프랑크푸르트 유대교회당의 랍비인 네헤미아 노벨에게서 다른 아버지 상, 곧 종교 교육을 받은 아버지 상을 찾았다.
내면의 아버지 상에서 벗어나는 데는 또 다른 사람들과 경험들이 필요했다. 부성애의 억압적인 내적 상들을 포기하는 것은 고유의 창의력과 사랑의 능력에 매우 유익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프롬은 1922년 죽마고우인 레오 뢰벤탈에게 약혼녀를 빼앗긴 후에 1923년 정신분석가 교육을 받은 열한 살 연상의 정신과 의사 프리다-라이히만을 알게됐다. 그는 그녀와 함꼐 하이델베르크에서 1924년부터 1928년까지 치료실을 운영했다. 그러다 그는 자신의 정신분석가와 사랑에 빠져 1926년 치료상의 감정 전이적 사랑으로 프리다와 결혼했다. 2년 뒤 그들의 결혼 생활은 이미 파국을 맞았지만 프롬은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고 한다.
1931년 프롬은 개방성 결핵에 걸려 스위스 다보스의 요양소에 입원해야 했다. 그의 발병은 사실상 그가 프리다와 헤어지는 계기가 됐다. 이후 1934년 그는 미국으로 망명할 것을 결심했고, 미국에서는 열다섯 살 연상의 정신분석가 카렌 호니와의 우정이 점차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결혼에 이르지 못했지만 프롬이 뉴욕을 떠나 여행을 갈 때마다 카렌 호니가 동행했다. 하지만 그녀와의 연인 관계는 1941년까지 지속되었고 격한 다툼 끝에 파국을 맞았다. 카렌 호니와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롬은 동갑인 헤니구어란트를 알게 됐다. 그녀는 발터 베냐민과 함꼐 나치스를 피해 프랑스에서 도망쳐 나왔다가 스페인 국경에서 베냐민의 자살 사건을 겪었다. 그는 독일에서 태어난 사진 기자 구어란트와 1944년 결혼했다.
그는 그녀와 함께 1947년 버몬트의 베닝턴에 집을 지었다. 두 사람이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를 하자마자 헤니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몸져누웠다. 프롬은 헤니를 혼자 두지 않으려고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그런데도 병세는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상황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악화 일로로 치달았다. 1952년 6월 헤니는 마침내 욕실에서 숨을 거둔 채 발견됐다. 프롬은 사랑을 찾으려는 시도를 끝냈다.
새로운 사람을 사귈 용기
헤니의 죽음은 프롬에게 자신의 한계와 실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몇 달 후 프롬은 새로운 사람을 사귈 용기를 되찾았다. 처음으로 미국 여성을 만났는데 바로 앨라배마 출신의 애니스 프리먼이었다. 애니스는 남편을 세 명이나 잃은 미망인이었고 마지막 남편과는 인도에서 살았지만 그가 죽은 후에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그가 몇 달 씩 미국에 출장 갈 때 따라갔고 미국 정치 및 군비축소운동, 평화운동과 관련된 그의 활동을 지지했다. 사랑의 기술은 1956년에 출판됐다. 프롬은 헤니와의 무력한 이별과 애니스에 대한 사랑으로 비로소 어린아이의 애착에서 벗어난 사랑의 능력을 발견했다. 그제야 비로소 그의 사랑하는 능력의 실천이 그의 사랑의 이론과 실제로도 일치할 수 있었다.
책 리뷰
아무것도 모르는 자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못한다.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자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무가치하다.
그러나 이해하는 자는 또한 사랑하고 주목하고 파악한다...
한 사물에 대한 고유한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랑은 더욱더 위대하다...
모든 열매가 딸기와 동시에 익는다고 상상하는 자는
포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파라켈수스-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사랑'을 이해하고 그의 철학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가 어떠한 사랑을 받고, 어떻게 사랑을 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리뷰를 시작하기 전 저자 에리히 프롬의 전반적인 삶을 꽤 길게 살펴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에게는 이상화된 사랑을 받았고 그러한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연인들을 많나며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독자였던 그는 부모님 각자의 기대 속에서 자라났고, 자연스럽게 그의 안에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상'이 자리잡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자신을 찾기 위해 부모님에게서 벗어났고 정신적으로 통할 수 있는 여인들을 만났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상처도 받고 슬픈 이별도 맞이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사랑을 찾고자 하는 열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이 '사랑의 기술'을 집필하는 데 큰 영향을 준 사랑하는 반려자를 만나 그를 가둬왔던 어린 아이의 애착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과연 그가 말하는 인간의 사랑은 어떤 것일까요.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문제일 뿐입니다. 또 사랑의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는 가정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의 특징 상 사람들은 사랑을 하기 보다 사랑 받고 인기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 문화의 특징적 성격_구매욕, 시장 지향적
우리의 모든 문화는 구매욕에 또한 상호 간 유리한 거래라는 관념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상점의 진열장을 들여다보며 느끼는 스릴과 살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현금 또는 할부로 사는 맛, 이것이 현대인의 행복입니다. 그 또는 그녀는 같은 방식으로 사랑을 대합니다. 남자에게는 매력있는 여자 그리고 여자에게는 매력있는 남자는 탐나는 경품입니다. 여기서 매력은 보통 인기있고 퍼스낼리티 시장에서 잘 팔리는 품질 좋고 멋진 포장을 의미합니다. 안타깝게도 사랑하게 되었다는 느낌은 보통 자신의 교환 가능성 범위에 있는 인간 상품에 대해서만 나타납니다.
그는 시장 지향적이고 물질적 성공이 현저한 가치를 지니는 문화권에서 인간의 애정 관계가 상품 및 노동시장을 지배하는 교환 형식과 동일하다고 해서 놀랄 이유는 없다고 말합니다. 물론 처음에 그들은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고 강렬한 열중 곧 서로 '미쳐버리는 것'을 열정적인 사랑의 근거로 생각하지만 이것은 기껏해야 그들이 서로 만나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는가를 입증할 뿐입니다.
사랑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이론과 실천 그리고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물론 현실은 사랑 외에 일, 권력, 명예, 성공에만 몰두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우리 모두는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가슴 속 깊이 가지고 있습니다.
분리가 만들어 낸 불안
인간은 무언가로부터 분리된 상태를 극복하려고 하는 강렬한 욕구를 지니고 있습니다. 고독이라는 감옥을 벗어나고 싶어합니다. 분리에서 오는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로의 도취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도취 상태가 부족 내의 공통된 관습으로 행해지는 한 불안감이나 죄책감은 생기지 않습니다. 비도취적 문화권에 살고 있는 개인이 선택하는 형태는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입니다. 정형화된 해결에 참여하는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이러한 사람들은 되책감과 후회로 괴로워합니다.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노력들은 분리감을 더욱 증대시킬 뿐입니다.
'합일'을 향한 욕구
물론 원시사회에서는 소규모 집단이었기 때문에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지만, 점차 발전하면서 큰 도시로 성장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큰 나라의 시민으로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 사이의 '합일'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의도적으로 '이뤄내야 하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특히 군중에 소속되어 있는 합일의 욕구를 가장 크게 느끼는데, 남과 다르다는 데서 느끼는 공포와 군중과 약간 떨어져 있다는 데서 느끼는 공포는 강력합니다. 이러한 공동체 속에서 사람들은 일치하고 싶어하는 자신의 욕구조차도 알지 못하게 됩니다.
비개성화된 평등
현대 사회는 비개성화된 평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대집단 속에서 마찰 없이 원활하게 일하도록 서로 동일한 원자적 인간이 되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감정조차 지시받고 상투적 생활의 그물에 걸린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는 개인이며 희망과 절망, 슬픔과 두려움, 사랑에 대한 갈망, 고독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단 한 번 살아갈 기회와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순수한 사랑
다른 사람 만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과 태도도 '대상'이며, 다른 사람과 우리 자신에 대한 태도는 모순되기는 커녕 기본적으로 '결합적'인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곧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을 사랑할 때 사랑의 대상은 그 상대뿐만아니라 상대를 둘러싼 모든 것입니다. 순수한 사랑은 누군가에 의해 야기된다는 의미에서의 '감정'이 아니라 사랑받는 자의 성장과 행복에 대한 능동적 갈망이며, 이 갈망은 자신의 사랑의 능력에 근원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합일, 관습을 향한 순종적인 태도, 권위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그저 명령에 순응하게 만듭니다. 어느새 사람들은 하나의 상품으로 여겨져 사회라는 거대한 진열장에서 더 가치있는 값으로 매겨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알고 있는' 이성을 가진 인간이지만 어느새 자신의 감정조차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물론 그 안에서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고독'을 느끼지는 못합니다. 어쩌면 느낄 틈이 없는 것이죠. 제도화된 엄격한 규율 아래에서 기계처럼 돌아가다보면 어느새 '나'라는 존재를 탐구하고자 하는 욕구는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프롬은 오늘날 인간의 행복은 '즐기는 데'에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즐긴다는 것은 '만족스러운 소비'를 말하고 음식, 술, 담배 등 모든 것이 소비되고 모든 것을 삼켜버립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지금 누군가로부터 관심을 얻고 '받는 것'에만 몰두해 있습니다. 우리 자신도 잘 모른 채 말이죠. 사랑은 하는 것도 포함한다는 것은 머리로는 다 알고 있지만 내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과정인지, 빠지는 과정인지 구분도 못하는 현대인들에게는 그것조차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프롬은 '나' 자신에 대해 민감해지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다른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존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건강한 자아를 만들어야 사회 안에서도 사랑할 줄 아는 본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인상깊은 구절
나 자신의 자아에 대한 사랑은 다른 존재에 대한 사랑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내 행위 속에 판단과 결단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내가 이 사랑이 영원하리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앞서 나온 내용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자기애,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 신에 대한 사랑 등 사랑의 대상을 기준으로 사랑의 유형을 펼쳐놨습니다.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에 대한 파트였습니다. 프롬과 부모님 사이의 서사를 모두 알고 나니 그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했던 애착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것도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무조건 적'인 사랑을 하고 아버지는 '조건이 있는 사랑'을 한다는 지점이 인상깊었습니다. 실제로 나의 삶과 연결지어 생각해보니 공감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사랑에는 노력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책을 덮고 나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스스로 도달한 성숙도와는 관계없이 누구가 쉽게 탐닉할 수 있는 감상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이 이 책의 의도입니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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