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인문 철학

악마와 함께 춤을😈_크리스타 K. 토마슨

나연 킴 2025. 3. 12. 14:06

안녕하세요😄

오늘은 분노, 시기, 질투 등 부정적인 감정을 다룬 '악마와 함께 춤을'이라는 책을 가져왔습니다!

제목으로만 봤을 때는 쉽게 책 내용을 유추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하면 때로 우리를 악마로 만드는 부정적인 감정들과 함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자세히 탐구한 책입니다. 간단한 책 소개와 함께 리뷰 시작하겠습니다!

 

 

저자: Thomason, Krista K.

번역: 한재호

출판: 흐름출판

발행: 2024.12.16

 

악한 감정을 털어내려 하지 마라!
아름다운 정원에는 만발한 꽃들도, 잡초도, 지렁이도 함께 사는 법이니까

산다는 것은 행복한 일만 취사선택할 수 없는 일이다. 언제는 기쁜 일이 닥치고 불시에 분노가, 앙심이, 시기심이 치고 올라오는 것이 삶이다. 우리는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낄 때 분노한다. 누군가가 나를 조롱하거나 폄하할 때...또 우리는 각기 다른 상황에서 질투를 느낀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게 아니다. 내 삶이 침해당했을 때 분노하는 것은 내 삶을 아끼는 방식의 하나이며 평온했던 나의 인간관계에 균열을 내는 이를 질투하고 분노하는 것은 나쁜 행동이 아니다.

스와스모어대학교에서 철학과 교수를 역임하는 '악마와 함께 춤을' 저자는 간디, 공자, 괴테, 몽테뉴 등 철학자들이 내린느 부정적 감정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며 결국 부정적 감정과 싸우거나 이를 생산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신화에 통렬하게 맞서고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부정적인 감정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은 그저 내버려두는 것이다. 받아들이고 느껴라. 물론 고통스럽고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당한 이유를 찾지 말고 본인을 다그치지도 말라. 없애려 하거나 밀어내려 하지 말라. 꽃이 만발한 비옥한 흙에는 지렁이가 가득한 법이다. 독자라면 책을 덮고 난 후 오해받고 지탄받던 부정적 감정이 어떻게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지 알게 될 것이다.

 

저자

 

 

'악마와 함께 춤을' 저자 크리스타 K. 토마슨은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에서 철학과 고전학을 전공했다. 일리노이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아 현재는 스와스모어대학교에서 철학과 부교수로 있다. 감정 철학, 도덕 철학, 철학사, 정치 철학 등을 주로 연구한다. 스와스모어대학교는 2024년 'US News' 기준 인문학 및 순수과학 분야의 학부 과정을 중점으로 다루는 리버럴아츠 칼리지 3위에 오른 명문이다. 이곳은 1600명 남짓의 적은 학생 수로 교수 한 명당 학생 8명의 비율로 구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는 학부 졸업생 비율 기준 전 세계 네 번째로 높은 기록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부정적 감정과 싸우거나 이를 생산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신화에 통렬하게 맞선다. 저서로 'Naked: 수치심과 도덕적 삶의 어두운 면'가 있으며 그의 논문 일부는 '철학과 현상학 연구' '유럽 철학 저널' '칸티안 리뷰' '모니스트'에 실렸다. 그 외에도 월스트리트저널, NBC 뉴스, CNN 등 다양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철학적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고 있다.

 

리뷰

 

19세기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노예로 태어난 철학자 안나 줄리아 쿠퍼가 있었다. 그녀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것은 에세이 모음집 '남부의 목소리'다. 이 에세이 중 한 편에서 기차를 타고 혼자 여행하는 흑인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백인 여성이 기차에서 승강장으로 내려가면 차장이 팔을 잡거나 짐을 들어서 도와준다. 하지만 흑인 여성이 기차에서 내리면 차장은 일부러 팔짱을 끼고 돌아서서 도와줄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다.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흑인 여성은 다음과 같은 감정을 느낀다.

 

 

나의 비통함은, 유노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거부당해서 느낀 모욕감이 세속적이고 저속적인 것이라 하면,

질투보다 성스럽고, 분노보다 깊고, 격노보다 부드러운 것이다.

이 비통함으로 인해 내가 최초로 느낀 충동은 분노에 찬 항의와 당당한 자기 옹호였으나,

자기주장을 하면 그와 똑같이 섬세한 본능인 분노가 훨씬 더 격해질 것이라는 의식 탓에

나는 최초의 충동을 억누르고 수치심을 느낀다.

 

여성은 분명 모욕을 당했다. 그리고 분노를 느꼈는데 그녀는 이 분노가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당하다고 여겨지는 반면 수치스러움도 함께 느껴진다. 감정은 복잡한 일종의 육감과 같은데 때로 우리는 이러한 감정들을 느끼면서 세상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감정을 통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 다른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자신의 인식도 할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이 받은 부당한 대우에 분노를 느꼈고 이것은 즉 본인이 자신을 어떻게 여기는 지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녀는 똑같이 존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때로는 우리가 미처 뭔가 깨닫기도 전에 감정이 먼저 그걸 깨달을 때도 있다.

 

삶에서 감정은 땔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어쩔 때는 자신이 화가 난 것인지, 슬픈 것인지, 답답한 것인지 스스로 감정을 파악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또한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도 잘 모른다. 그래서 화를 내고 싶을 때는 무작정 자신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고 슬픔이 몰려오면 스스로를 애써 격려하며 위로한다. 하지만 감정이 통제될 수 있을까? 우리는 감정을 평가하거나 판단하려고 들면서 자신을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감정 그 자체도 삶을 지니므로 우리는 감정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조지 오웰, 감정을 통제하려고 하는 사람들

 

 

조지 오웰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성의 본질은 완벽을 추구하지 않고 때로는 충성을 위해 기꺼이 죄를 지으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까지 고행을 강요하지 않고, 개인의 사랑을 다른 개인에게 종속시키는 행위의 필연적인 대가로, 결국 삶에 의해 패배하고 깨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요점은 성인이 되려면 인간성을 덜어 내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인간성을 덜어 내면 소중한 것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최고 위치인 '성인'을 주장한 간디와 전혀 다른 방향성을 가진 오웰은 좋은 인간외 되는 게 성인보다 낫고, 인간은 실패한 성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웰은 인간이 도덕적으로 선한 삶을 최선의 시나리오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성인의 삶이 최선이라고 믿는 사람은 인간성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부정적인 감정은 뿌리를 뽑아야 하는 잡초라는 생각을 가지고 분노, 질투, 악의를 덜 느껴 더 나은 사람이 되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감정 통제형 성인'처럼 인간성을 덜어내려고 노력하는 삶을 사는 것이 옳은 것일까?

 

감정 통제형 성인은 감정이 마음을 통제하는 데 위협이 된다고 생각한다. 보통 우리는 "너는 너무 감정적이야"라고 말하며 감정에 사로잡힌 사람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일명 어른이 된다는 건 감정을 통제하고 절제해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언제나 인간은 어리석은 일에 지나치게 열중할 수도 있고 작은 일을 크게 부풀려 생각하면서 감정의 균형이 깨지는 경험을 하며 살아간다. 우리가 완벽한 통제형 성인이 아닌 이상 부정적인 감정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혼란도 우리의 삶의 일부다. 즉 혼란을 없애려고 하는 것은 인간성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반드시 안락 의자에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걸까? 혼란이 오면 곧바로 조치를 취하려고만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감정의 이중 잣대

 

우리가 보통 나쁜 감정에 대해 갖는 의심은 대부분 '감정의 이중 잣대'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좋은 감정은 반드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다는 게 사실일까?라는 물음에서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아름다움과 성스러움의 상징 '사랑'은 절대 잘못 될 수 없는 것일까? 사랑때문에 집착하고 어리석게 굴며 파괴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도 무수히 많다. 부정적인 감정처럼 긍정적인 감정도 질병과 나쁜 품성의 결과일 수도, 망상과 왜곡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런 앱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음챙김 어플' '스트레스 관리 어플' '부정 성향 제거' 즉 감정 위생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것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안타깝게도 현재 사람들이 많이 불행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기분이 나아지기 위한 방법을 찾고 싶어한다. 흔히 '긍정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나쁜 감정을 좋은 감정으로 대체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그렇게 감정 자체를 다른 바람직한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만 여긴다. 그래서 감정을 행복과 성공을 달성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도구로 취급하거나 행복과 성공을 방해하는 요소로 취급하는 건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정원에는 예쁜 꽃, 푸른 풀이 있지만 징그러운 지렁이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지렁이가 정원의 일부인 것처럼 감정은 내 삶의 일부다. 하나하나 지렁이를 제거해서 정원을 가꾸기는 불가능한 것처럼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면 그냥 놔두는게 답일 수도 있다.

 

변명도 옹호도 없이 직면하라

 

감정을 어떻게 하려고 드는 건 우리가 가장 쉽께 빠지는 함정이며 거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단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데 질려서 그것을 극복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감정은 억지로 느낄 수도 없고 수도꼭지 잠그듯이 누를 수도 없다. 감정은 원래 그런 것이다. 예를 들어 시기를 느끼고, 누군가를 경멸하고 질투하는 것은 부정적인 영역에 속한 감정들인데 우리는 이것에 저항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건 감정에 휘둘려 우리를 통제하기 어려워질까 두려움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분노, 질투, 시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단지 우리가 모욕감을 느꼈다는 사실을 말해 줄 뿐이다.

 

 

나쁜 감정을 정당화하는 건 보통 감정을 느끼기를 거부하는 또 다른 방법일 뿐이다. 누군가가 나의 삶을 방해해서 화를 내는 건 나에게 중요한 일이다. 간혹 분노를 타인의 문제로 만드는 경향이 있지만 그저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를 스스로 솔직히 살피는 것이 우선이다. 

 

악당 찾아내기

 

우리는 나쁜 감정을 '괴물' '악당'으로 만드는데 그 까닭에는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은 마음이 내포되어 있다. 단순한 불쾌감을 넘어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찾을 때도 있는데 그것은 악당을 찾아내면 인생은 원래 불공평하고 누구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는 가능성에 직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실패, 방황 또는 외로움을 맞닥뜨리기 보다는 차라리 적을 만들기를 원하는 것이다. 적이 있으면 자기 의심으로부터 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삶이 반복되면 진정한 '나'를 잃게 된다. 결국 우리는 자신의 두려움을 솔직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분노를 솔직하게 대한다는 건 반드시 바람직한 종류의 분노만 느껴야 한다거나 분노에 항상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좋은 분노도 나쁜 분노도 없다. 그저 분노가 있을 뿐이다. 

 

지렁이를 사랑하라

 

우리는 우리 정원의 지렁이를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야 한다. 19세기 미국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1845년 7월 4일 월든 호수 근처의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점차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위해 숲으로 들어왔음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삶을 사소한 일로 허비하지 않고 주도적으로 살고 싶어했다. 이후로 소로는 야생 즉 주변의 자연 세계뿐만 아니라 자기 내면의 야생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다. 소로는 숲에 살면서 환상적이고 정신적인 것이 저 먼 우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주변에 있었음을 발견한다. 이에 삶의 의미는 '우리를 둘러싼 현실을 끊임없이 흡수하고 그 안에 흠뻑 젖어드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내면에는 야생적인 부분이 존재한다. 그 곳이 바로 나쁜 감정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우리는 이것을 사랑하기 위해서 뭘 해야할까? 먼저 감정성인이 되려는 노력을 버려야 한다. 감정 성인이 약속하는 행복한 평화는 인간적인 삶을 희생하는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다. 삶을 잘 살려면 그저 살아가려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잘 살면 그만이다. 나쁜 감정은 좋은 삶을 방해하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삶은 복잡하다. 삶은 항상 긍정적일 수는 없다는 걸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이로 부정적인 감정이 찾아와도 당황하지 말고 대처하지 말고 그냥 느껴면 그만이다.

 

그냥 느껴라. 감정에도 독립성을 인정하자. 삶만큼 인간의 감정 생활도 복잡하기에 우리가 항상 뭘 느끼는지 다 아는 것은 아니며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느끼는 것도 아니다. 

 

인상깊은 구절

 

당신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상대방에게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고 마음을 연다.
두렵더라도 방어벽을 허물고 상대방을 받아들인다.
내면의 야생을 같은 방식으로 사랑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