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누자
안녕하세요!
오늘은 짧지만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단편 영화 한 편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평소에 아카데미 후보작이 선정되면 궁금증에 하나씩 찾아보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실사 단편 부문 후보로 오른 '아누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개봉일: 2024.08.17
배급사: 넷플릭스
제작자: 프리얀카 초프라, 마이클 그레이브스
장르: 단편, 드라마
출연: 사지다 파탄, 아나니아 샨바그, 나게시 본슬레 등
상영시간: 23분
영화 소개

영화 '아누자'의 배경은 2022년 인도 뉴델리입니다. 부모님도 계시지 않고 언니와 단 둘이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어린 소녀 '아누자'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으로 흘러갑니다. 아누자는 언니와 함께 어린 나이에 방직 공장에서 고된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불 하나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는 작은 공간 안에서 언니와 단 둘이 살아가면서도 아누자는 포기 하지 않고 꿋꿋이 버텨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소녀를 눈여겨 보고 있던 한 기숙학교 교사가 찾아와 그녀에게 학교 입학시험에 치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400루피라는 시험 응시료가 턱없이 높게만 느껴진 소녀는 차라리 그 돈이 있다면 언니와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는 마음이 들 뿐이었습니다. 한편 아누자의 언니, 팔라크는 자신의 동생의 현실적인 생각이 안타깝게만 느껴지고, 똑똑한 동생이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입학 시험을 권유합니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입학 시험을 치르고 기숙학교에 들어가 새로운 삶을 누릴 것인지, 아니면 언니와 함께 공장에 남아 현재의 삶을 살아갈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 아누자는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될까요?
주목할 만한 점
1. 현실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

영화를 보고 나면 엔딩 크레딧과 함께 영화 제작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이 나옵니다. 우선 이 영화 제작을 후원한 '살람 발락' 재단은 뉴델리 거리와 일터를 전전하는 수천 명의 아동에게 식량, 숙소, 교육을 제공하는 비영리 단체입니다. 영화에서 '아누자' 역을 맡은 소녀 사즈다 파탄은 실제 보호 아동 중 한 명이라고 합니다. 여주인공 사즈다 파탄은 재단의 어린이 보호소에서 다른 입주 어린이들과 함께 영화를 함께 보기도 했습니다.
이 재단은 지난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영화 경쟁부문인 뉴 커런츠 부문의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되기도 했던 '미라 네어' 감독이 세운 재단이라고 합니다. 사회운동가로도 활동 중인 미라 네어 감독은 1999년 인도 빈곤 어린이들을 위한 살람 발락 재단을 세웠고, 2004년에는 동아프리카에 영화감독 양성을 위한 무료 학교인 마이샤 필름 랩을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또 문화 예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인도 최고의 시민상인 파드마 부샨훈장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영화 내에서는 인도 뉴델리 빈민가의 환경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인도의 수도이기도 한 뉴델리 안에는 실제로 번화가로 발전된 곳도 있지만 개발되지 못하고 낙후된 빈민층의 생활공간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그곳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거리를 떠돌며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영화에 등장합니다. 영화의 주인공 '아누자' 역을 맡은 사즈다 파탄도 실제 보호 아동 중 한 명이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지만, 자신이 겪고 있는 현실이기에 연기가 아닌 생생한 삶의 현실을 나타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마지막 소녀의 눈빛은 어떤 배우도 표현하기 힘든 현실의 순간을 보여주어 가장 인상깊게 남았던 것 같습니다.
2. 거리와 일터를 전전하는 사람들

아누자는 언니와 입학시험에 필요한 돈 400루피를 벌기 위해 길거리로 나가 언니가 만든 가방을 팔기 시작합니다. 언니 팔라크는 방직 공장에서 일을 하며 몰래 천을 빼내어 밑에서 가방을 만들었습니다. 차곡차곡 모아둔 가방을 들고 그들은 무작정 거리로 나가 사람들에게 호객행위를 합니다. 그러던 중 길을 잘못 들어 한 번화가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게 된 아누자. 영문 모르는 사람들은 아누자의 모습을 보면서 소녀를 다소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결국 한 아주머니에게 가방 2개를 팔게 되어 800루피를 받게 됩니다. 물론 백화점 경비 아저씨에게 붙잡히기는 했지만 소녀는 돈을 벌어 이제 언니와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기만 합니다.
여기서 인도의 백화점으로 화면이 전환되면서 영화에서 주로 다룬 인도의 현실과는 또 다른 환경이 등장합니다. 먼지가 날리고 편히 쉴 공간 하나 없이 어수선한 빈민가 시장터, 무너질 듯한 작은 집들과 공장들로 가득찬 거리와는 사뭇 다른 공간인 백화점은 한 지역이지만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첨예하게 갈린 듯한 인도의 모습을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아누자가 그토록 원했던 400루피를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약 6650원입니다. 우리에게는 편의점에서 과자 두 세개 살 수 있는 돈이 이들에게는 학교를 갈 수 있을 만큼 큰 돈이었던 것입니다. 800루피를 벌고 언니와 영화관도 가고 먹고 싶었던 과자를 사먹으며 행복해하는 아누자의 모습은 공장 안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순수한 소녀 그 자체였습니다. 집은 불도 켜지지 않아 손전등으로 책을 읽어야 하는 현실 앞에서 아누자가 당장의 현실을 택하려고 하는 마음이 영화에 그대로 나타나 안타까움을 더했습니다.
3. 아누자의 선택

영화는 아누자의 언니가 들려주는 동화 나레이션과 함께 시작합니다. 농부, 그의 아내, 딸, 몽구스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부부가 외출하던 날 딸이 혼자 있던 집 안에 뱀 한 마리가 들어오고 몽구스는 딸을 지키기 위해 뱀을 물어 죽입니다. 그때 남편이 돌아왔는데 몽구스 입에 뭍은 피를 보고 딸을 문 것이라고 생각해 몽구스를 폭행하기 시작합니다. 뒤이어 아내가 들어오자 멀쩡한 딸과 무참히 맞고 있는 몽구스가 보였습니다. 모든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을 때 몽구스는 이미 죽어있었다는 슬픈 동화입니다. 몽구스를 때려잡은 농부는 아누자가 처한 가혹한 현실이고 이겨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만 결국 비극을 맞게 된다는 비참한 결말을 뜻하는 것일까요. 힘겨운 앞날을 맞이할 아누자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어쩌면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결국 끝내 공장에 들어가는 언니의 뒷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아누자의 모습으로 끝이 납니다. 어차피 아누자의 선택은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었고, 소녀를 위해 누구도 손을 내밀어 줄 수 없는 현실을 영화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똑똑한 여자애가 되기 싫으면 어떡해?
별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