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에세이

내 꿈에 가끔만 놀러 와🎡_고선경

나연 킴 2025. 6. 25. 15:07

안녕하세요 😄

오늘은 목적지가 불분명한 방황, 동사할 것 같은 여름과 화염에 휩싸인 듯한 겨울이 뒤엉킨 책 한 권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누구나 지우고 싶은 혹은 잊고 싶은 삶의 부스러기들이 잔뜩 담긴 책으로, 작가님의 비밀 일기와도 같은 이야기 속을 탐구해보겠습니다. 책 제목은 '내 꿈에 가끔만 놀러 와'이고 간단한 책 소개로 시작해 본격적인 리뷰를 진행하겠습니다!!

 

 

저자: 고선경

출판: 문학동네

발행: 2025. 05. 14

 

첫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 출간 이후 뜨겁게 주목받으며 청년 세대를 대변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고선경의 첫 산문집 '내 꿈에 가끔만 놀러와'가 출간되었다. 시인이 수년간 블로그에 연재해 온 일기에 때때로 기록한 메모, 새로 쓴 원고들을 더해 엮은 이 책에는 이십대 청년으로서 그가 줄곧 그려온 알록달록한 마음의 무늬들이 수놓여 있다. 심상한 듯 하다가도 때때로 일상을 압도하는 고뇌, 등단을 준비하며 겪었던 자신과의 치열한 사투, 마침내 세상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시인으로 발돋움한 뒤에도 왜인지 사라지지 않는 내면의 괴로움이 두루 담겼다. 때때로 감당하기 힘들 만큼 거센 우울이 역풍처럼 찾아오지만, 그것에 함락당하지 않고 버텨내려 애쓰는 고선경만의 꼿꼿한 긍정의 자세가 글자의 틈새마다 시리게 빛난다.

 

내용 정리 및 리뷰

 

 

타인과 접속한다는 것

책의 저자인 고선경 작가님은 2021년도에 블로그를 개설하셨는데 그 이름이 '분리수거 연습'이었다. 나 또한 2개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다른 플랫폼과 다른 블로그만의 매력을 잘 알고 있었다. 요즘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앱에는 인스타그램이 지배적인데, 책 안에서는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의 차이를 이렇게 나타내고 있다.

 

"인스타그램은 노출의 세계이고 블로그는 접속의 세계이다"

 

인스타그램은 누군가 올린 피드에 올린 게시글을 내려보는 형식이고, 블로그는 겉만 둘러본다고 해서 알 수 있지 않기에 반드시 접속하고 게시글을 눌러봐야 내용을 알 수 있다. 이는 피드를 내리듯 외면을 둘러보는 일이 아니라 내면으로 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때때로 직접적으로 상대방과 접속하지 않아도 간단한 클릭 한 번으로 이웃을 맺고, 그 사람을 알 수 있기도 하다. 반면 블로그는 서로이웃을 신청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쉽게 일어나지는 않아서 블로그를 운영하는 또 다른 누군가를 발견하면 반갑게 느껴질 때가 있다.

 

가끔 자아 노출증과 대인기피층에 시달리셨던 작가님은 블로그에 종종 일기를 올리셨다고 한다. 그 중 처음 올린 게시물의 제목이 '오래된 질문'이었는데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질문인 "나는 왜?"로 시작하는 질문이 가득 담겨있었다. 어쩌면 블로그는 작가님만의 대나무숲이 아니었을까 싶다. 스스로 별명도 지을 수 있고 부끄러워지면 글을 수정하거나 비공개로 전환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특히 작가님에게 블로그는 정신과 치료 일지를 기록하기 위한 용도였다. 

 

"내가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잃어버린 현실감각을 나에게 돌려주려고 그 일지를 썼다"

 

블로그는 보이는 만큼도 못 볼 수 있고,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블로그 세계관에서는 '서로 이웃'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타인에게, 타인이 나에게 접속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느냐가 핵심인 것이다. 그것이 블로그가 피부로 느끼는 접촉이 없어도 누군가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인 이유이다.

 

 

내 인생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Life vest under your seat'

 

'Life'라는 단어가 인생이라는 뜻도 있지만, '구명'이라고 번역될 수도 있다. 우연히 비행기 안에서 발견하게 된 한 문구에서 삶이란 사람을 구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저자는 살아가면서 최소한 나를 구할 수는 있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나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라는 명제가 우리를 관통하고 있다. 작가님은 끝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어떻게든 구해내고 싶었다고 하셨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구명 프로젝트는 거창한 것이 아닌 작은 실오라기 하나에서 시작한다. 자신이 마땅히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실천하거나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밑바탕에 있다. 

 

 

여행의 의미

속초로 여행을 떠난 작가님은 문득 '여행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셨다.

 

"여행의 의미가 뭔지 알고 싶었는데, 그런 걸 알려고 할수록 여행이 의미를 잃어가는 것 같았다"

 

우리는 여행을 마치면 반드시 커다란 의미를 깨닫고,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해야 하는 것일까? 힘들거나 지칠 때 떠난 여행에서 우리는 힐링을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출발한 여행에서는 수많은 사진과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긴다. 특별한 의미가 없어도 여행 자체로도 괜찮기에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관광객으로서 여행을 끝마치면 된다. 모두 겪고 나면 이것 또한 자신의 세계에 편입되어 나만의 기억 속에서 또 다른 관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배에 올라타 짧은 줄을 통해 이 세계, 저 세계로 이동하는 관광객들은 어떤 장소나 풍경에 급하게 사랑에 빠진다. 제대로 관광하지도 않고 사랑에 빠지고 혹은 명확히 알지도 못하고 역겨워할 수도 있다. 나를 여행지로 비유했을 때, 타인에게 나는 어떤 관광지가 될 수 있을까. 또 나는 어떤 여행지에 줄을 묶고 발을 내딛을 수 있을까. 마음 속을 가로지르는 배를 위해 줄을 끌어 당긴다. 그리고 나의 세계를 소개한다.

 

'안녕 여긴 나의 세계야. 하지만 전부는 아니야'

 

 

주입된 낭만

 

나는 잘 알지 못했는데, 여수에 내려가면 포차 거리에 거의 모든 점포가 낭만포차라는 상호를 사용한다고 한다. 심지어 메뉴도 비슷하다. 영업용 미소처럼 여행객들을 반기는 장식용 불빛들이 어쩐지 앙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여수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관광지는 낭만을 미끼로 소비를 부추기기도 한다. '이왕이면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가야지', '비싸더라도 기분 좋게 주문해야지' 라는 등의 생각들이 어느새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관념으로 자리잡게 됐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추억을 돈으로 주고 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을까.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과연 '남들처럼 하는 것'을 자신의 낭만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주입된 낭만에 젖어버리면 더이상 자신만의 낭만을 찾으려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낭만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근처 아이스크림 가게 가서 더운 여름날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하나를 고르는 것, 모든 일이 끝나고 저녁에 집에 와서 가족들과 함께 저녁식사 시간을 갖는 것 정답은 없다. 그렇다고 낭만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과거의 기억 위로 새로운 기억을 덧씌웠을 때 여전히 좋은 것들은 보존되고 그렇지 못한 것들은 폐기되기 때문이다. 

 

보통 기억들은 이런 식으로 선택되고 변형되어 머리에 남는다. 추억과 기억은 명백히 다른 것인데 어쩌면 낭만화된 기억이 우리 머릿속에는 잊지못할 추억으로 저장되어 있을 수도 있다.

 

 

최소한의 기대

작가님이 첫 시집을 내시고 두번째 시집을 출간하실 때  한동안 골머리를 앓으셨다고 한다. 첫 시집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동시에 하나라도 더 발전된 모습을 선보이고 싶으셨던 것이다. 과한 욕심일지 모르겠지만 이전보다 더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고 싶으셨다고 한다. 

 

"더불어 나에 대한 기대를 접고 싶지가 않았다"

 

다음 행보에 대한 불안에도 작가님은 스스로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으셨다. 세상이 전보다 기대를 줄였다고 해도 나는 나에게, 그리고 세상에 언제나 어느 정도의 기대감은 가지고 싶은 강인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최소한의 기대는 삶을 향한 최소한의 애정과도 같다. 그 작은 힘이 무너진 나를 번번이 일으켜 세울 때가 많다. 눈으로 보이는 실질적인 결과보다 오히려 그 작은 기대감이. "넌 더 안도리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보다 내가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현실이 더 중요하다. 의미 없는 말 한 마디에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나 자신을 누군가에게 증명할 이유도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

 


 

사랑하는 모든 것이 이미 내 곁에 있다

 

작가님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스스로 말씀하시길 정제되지 않은 글들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내 마음을 두드린 것 같아서 놀라웠다. 이 글의 유효 기간이 나에게 꽤나 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보다 더 꿈처럼 느껴지는 현실적인 작가님의 세계에 초대 받아서 위로를 받는 것은 에세이를 조금 읽어본 나에게는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감정들이 담겨있기도 하고, 방황하는 누군가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해볼까 하는 용기를 줄 수 있는 메시지도 포함되어 있다.

 

절박함, 기쁨, 슬픔과 행복이 모조리 담겨져 투명하게 속이 비치는 바다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 보면 혼란스러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 안이 더 궁금해지도 했다. 불투명한 바다 위에 떠있으면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 지 몰라 두려움이 먼저 들지만, 투명하고 깨끗한 바다를 보면 당장이라도 들어가서 수영을 하고 싶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있는 그대로 묵직한 필체와 함께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그런지 읽는 나도 덩달아 솔직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괜찮아 잘 될거야'가 아닌 '괜찮아 나도 그래'라고 덤덤히 위로를 전하는 글 모음집이라는 느낌을 받았다.